대표 앨범 50 (1969 ~ 2018)

ECM의 50주년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50장의 대표 앨범을 선정해본다. 그런데 기획과 달리 실제 선정 과정을 거치며 내가 무모한 일을 벌였음을 깨달았다. 너무나도 많은 연주자와 다양한 스타일의 앨범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내 취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 결과 과연 선정된 앨범 50장이 ECM의 50년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을지 불안하다. 그래서 변명하는 마음으로 선정 원칙을 설명해본다. 일단 클래식을 전문으로 하는 뉴 시리즈 앨범을 제외했다. 내가 뉴 시리즈 앨범을 모두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50년을 정리한다고 해서 1년 단위로 한 장의 앨범을 선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특정 년도의 앨범이 대거 선정되기도 했다. 한편 10년 단위로 앨범을 정리했다고는 하지만 연주자별 안배를 무시할 수 없었다. 50년 전체 카탈로그에서 한 연주자의 앨범을 살피고 우수한 앨범의 수가 많으면 그 중에서 최고를 선정하려 했다. 그렇게 해서 보다 많은 연주자의 앨범이 선정될 수 있도록 했다. 그럼에도 키스 자렛처럼 한 연주자의 앨범이 여러 장 선정되었는데 이것은 그만큼 그 연주자가 ECM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음을 의미한다.

  객관적이려면 조건이 단순해야 하는데 이번 선정 작업의 조건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지극히 개인적인 목록이 되었다. 그렇다고 선정된 앨범들이 ECM을 대표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은 아니다. 레이블의 기장 기본적인 성향을 파악하기에는 충분하다. 특히 대부분 감상자들의 호응이 높았던 앨범들이기에 보다 편하게 감상하면서 ECM의 50년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를 바탕으로 보다 덜 알려진 연주자들의 앨범을 파고 들어 ECM이라는 음악 세계의 광활함, 숭고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기 바란다.

I. 1969 ~ 1978

Jan Garbarek Quartet – Afric Pepperbird (1971)
Chick Corea – Return to Forever (1972)
Paul Bley – Open, to Love (1972)
Gary Burton / Chick Corea – Crystal Silence (1972)
Eberhard Weber – The Colours Of Chloe (1974)
John Abercrombie, Dave Holland, Jack DeJohnette – Gateway (1975)
Keith Jarrett – The Köln Concert (1975)
Kenny Wheeler – Gnu High (1975)
Gary Burton Quartet with Eberhard Weber – Passengers (1978)
Keith Jarrett – My Song (1978)

ECM의 초기 10년은 미국 출신의 연주자들의 앨범이 많았다. 이것은 무엇보다 맨프레드 아이허가 평소 좋아했던 연주자들의 앨범을 적극 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유럽에서 자신의 소리를 내는 연주자들이 그만큼 적고 덜 발견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것은 이후 맨프레드 아이허가 개척할 일이기도 했다.

말 왈드론의 앨범을 시작으로 그는 키스 자렛, 칙 코리아, 돈 체리, 게리 버튼, 폴 블레이, 데이브 홀랜드 등 실력은 인정 받고 있었지만 아직 재즈의 중심으로 떠오르지는 못했던 연주자들의 앨범을 제작했다. 특히 폴 블레이는 이전에 녹음해 놓고도 앨범으로 발매하지 못했던 것을 발매해 주기도 했다.

이 시기에 발매된 130여장의 앨범은 음악적으로 즉흥 솔로 연주부터 퓨전 재즈, 프리 재즈, 포스트 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이후 레이블이 개척할 여러 갈래 길의 시작을 보여주었다. 또한 이들 앨범은 대체적으로 평단의 호평과 대중의 호감을 얻었다. 그 중 라틴적 색채를 가미한 퓨전 재즈를 선보인 칙 코리아의 <Return To Forever>나 키스 자렛의 즉흥 솔로 콘서트 연주를 담은 <The Köln Concert>같은 앨범은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며 연주자 개인은 물론 ECM이 지속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었다. 다른 연주자들도 이후 음악적 역량을 인정 받아 유명 연주자가 되어 ECM의 성장에 기여했다.  

미국 연주자들의 앨범들 사이에 유럽 연주자들의 앨범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특히 색소폰 연주자 얀 가바렉의 앨범 <Afric Pepperbird>은 주인공인 얀 가바렉은 물론 참여한 테르예 립달, 아릴드 안데르센, 욘 크리스텐센까지 세계적인 연주자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이 앨범은 처음에 교회에서 녹음되었다가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해 스튜디오에서 재 녹음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맨프레드 아이허와 엔지니어 얀 에릭 콩쇼그가 만나게 되었다. 이후 두 사람은 ECM만의 공간감 넘치는 사운드를 개척하게 되었다.

II. 1979 ~ 1988

Art Ensemble of Chicago – Nice Guys (1979)
Don Cherry, Collin Walcott, Nana Vasconcelos – Codona (1979)
Ralph Towner – Old Friends, New Friends (1979)
Charlie Haden, Jan Garbarek, Egberto Gismonti – Magico (1980)
Jack DeJohnette – Special Edition (1980)
Pat Metheny Group – Offramp (1982)
David Darling – Cycles (1982)
Charlie Haden – The Ballad of the Fallen (1983)
Keith Jarrett – Standards, Vol. 2 (1985)
John Surman – Private City (1987)

초기 10년이 ECM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이를 널리 인식시키는 기간이었다면 이후 10년은 본격적으로 성장하는 기간이었다. 맨프레드 아이허는 지난 10년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은 수의 앨범을 제작했다. 그럼에도 음악적 완성도는 매우 높았다. ECM의 전성기를 이야기 한다면 이 때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앨범 한 장 한 장이 뛰어났다. 이번 선정 과정에서 제일 어려움을 주었던 시기였다.

이 시기의 앨범들은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제작되었다. 첫 번째는 기존에 발견하고 발굴한 연주자의 성장을 돕는 것이었다. 팻 메시니가 대표적이었다. 게리 버튼 그룹의 세컨드 기타 연주자였던 그는 맨프레드 아이허의 신뢰 속에 솔로와 그룹 앨범을 녹음했고 그 앨범들은 성공을 거듭했다. 특히 <Offramp>의 성공은 그의 음악적 야심을 더 이상 레이블이 감당할 수 없게 했다. 이 외에 랄프 타우너, 에버하르트 베버, 아릴드 안데르센, 키스 자렛, 찰리 헤이든, 잭 드조넷 등이 자신의 음악적 상상력을 꾸준히 앨범을 통해 드러냈다.

두 번째는 연주자들간의 새로운 조합이었다. 초기에 게리 버튼과 칙 코리아의 듀엣을 기획했던 것처럼 맨프레드 아이허는 탁월한 직관으로 연주자들의 만남을 적극 주선했다. 찰리 헤이든, 얀 가바렉, 에그베르토 기스몬트로 구성된 트리오의 앨범 <Magico>, 케니 휠러, 데이빗 달링 등과 함께 한 랄프 타우너의 <Old Friends, New Friends>, 레이블 초기부터 제작하고 싶어했던 키스 자렛, 게리 피콕, 잭 드조넷의 트리오 앨범들이 대표적이다. 특히 키스 자렛 트리오 앨범의 성공은 피아노 연주자의 솔로 콘서트 앨범들과 함께 ECM의 상업적 안정성의 기반이 되었다.

한편 레이블의 카탈로그는 음악적으로도 매우 다양해졌다. 잭 드조넷의 프리 재즈 성향의 앨범부터 스페인적인 색채가 강한 찰리 헤이든과 칼라 블레이의 빅 밴드 앨범, 미니멀리즘 클래식 음악가 스티브 라이히 등의 앨범에 이르기까지 이 때부터 ECM의 카탈로그는 재즈를 넘어섰다. 모두 맨프레드 아이허가 자신의 장르와 상관 없이 자신의 마음에 든 앨범을 제작한 결과였다.

III. 1989 ~ 1998

Egberto Gismonti – Dança Dos Escravos (1989)
Miroslav Vitous – Atmos (1992)
Jan Garbarek Group – Twelve Moons (1993)
Jan Garbarek, The Hilliard Ensemble – Officium (1994)
Ketil Bjørnstad, David Darling, Terje Rypdal, Jon Christensen – The Sea (1995)
Kenny Wheeler, Lee Konitz, Dave Holland, Bill Frisell – Angel Song (1997)
Marilyn Crispell, Gary Peacock, Paul Motian – Nothing Ever Was, Anyway: Music of Annette Peacock (1997)
Tomasz Stanko Septet – Litania (Music of Krzysztof Komeda) (1997)
Anouar Brahem / John Surman / Dave Holland – Thimar (1998)
Dave Holland Quintet – Points of View (1998)

 20년의 시간에 걸쳐 ECM은 개성 강한 재즈 레이블로 자리잡았다. 평단과 감상자들은 맨프레드 아이허가 혼자 모든 연주자를 발굴하고 그들과 장기가 아니라 앨범 단위로 계약을 맺고 음악은 물론 사운드와 앨범 커버까지 세심히 공을 들여 앨범을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만드는 것에 찬사를 보냈다.

그와 함께 다양한 성향의 앨범들 중 맨프레드 아이허가 좋아하는 실내악적인 분위기가 반영된 앨범들이 보다 많은 관심을 얻었다. 케틸 뵤른스타드, 데이빗 달링, 테르예 립달의 바다를 주제로 한 앨범, 미로슬라브 비투스와 얀 가바렉의 듀오 앨범 <Amos> 등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얀 가바렉 그룹의 <Twelve Moons>도 퓨전 재즈 성향임에도 한층 공간적 여백이 강조된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또한 에그베르토 기스몬티의 솔로 앨범, 토마추 스탄코의 크리즈토프 코메다를 주제로 한 앨범, 그리스 영화 음악 작곡가 엘레니 카라인드로우의 앨범 등 지역적 색채를 바탕으로 새로운 질감의 음악으로 이어진 앨범들이 제작되었다.

또한 언급한 케틸 뵤른스타드나 미로슬라브 비투스의 앨범을 비롯해 케니 휠러, 리 코니츠, 빌 프리셀, 데이브 홀란드가 만난 <Angel Song>, 우드 연주자 아누아 브라헴과 존 셔먼, 데이브 홀란드가 만난 <Thimar> 등 여러 연주자들의 만나 함께 한 앨범이 제작되었다.

한편 맨프레드 아이허는 자신의 음악적 본능을 따라 앨범 제작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1984년 클래식 음악을 전문으로 다루는 ECM 뉴 시리즈의 시작이 그랬다. 이미 그는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거나, 교회의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하는 키스 자렛의 앨범이나 스티브 라이히의 앨범 등을 통해 클래식적인 앨범 제작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었다. 따라서 뉴 시리즈의 시작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여기서도 맨프레드 아이허는 탁월한 직관으로 개성 강한 연주자들의 조합으로 새로운 음악을 담은 앨범을 만들었다. 얀 가바렉과 클래식 남성 보컬 쿼텟 힐리어드 앙상블이 함께 한 <Officium>이었다. 이 앨범은 키스 자렛, 팻 메시니의 앨범들에 버금가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사실 뉴 시리즈 앨범들은 장르적 특성 상 이번의 대표 앨범 선정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이 앨범은 재즈와 클래식의 공존을 담고 있기에 선정했다.

IV. 1999 ~ 2008

Charles Lloyd – Voice in the Night (1999)
Keith Jarrett – The Melody at Night, With You (1999)
Nils Petter Molvær – Solid Ether (2000)
Bobo Stenson Trio – Serenity (2000)
Marilyn Crispell, Gary Peacock, Paul Motian – Amaryllis (2001)
Susanne Abbuehl – April (2001)
Tord Gustavsen – Changing Places (2003)
Paul Motian Trio – I Have the Room Above Her (2005)
Arild Andersen Group – Electra (2005)
Nik Bärtsch’s Ronin – Stoa (2006)

뉴 시리즈의 출범과 함께 클래식과 재즈(를 중심으로 한 여러 음악) 앨범을 동시에 제작하면서 지난 10년에 비해 앨범 제작 수는 보다 더 늘어났다. 그럼에도 어느 하나 소홀히 제작되지 않았다. 맨프레드 아이허는 새로운 연주자를 꾸준히 찾아 다녔다. 기존 ECM의 피아노 트리오 앨범들에 비해 한층 가볍고 달콤한 질감의 연주를 선보인 토드 구스타프센 트리오가 대표적이다. 이 외에 트럼펫 연주자 마티아스 에익, 피아노 연주자 닉 뵈르치스 로닌, 토마추 스탕코와 함께 활동하던 마르신 바실레프 트리오, 여성 보컬 수잔 아부헬, 그리고 그녀와 함께 하며 존재를 알린 피아노 연주자 볼페르트 브로데로데 등이 ECM의 새로운 미래를 책임질 연주자로 부상했다.

맨프레드 아이허는 잠시 잊혀진 연주자에게도 관심을 가졌다. 색소폰 연주자 찰스 로이드가 대표적이다. 이 색소폰 연주자는 70년대까지 활발한 활동을 하다가 80년대에 접어들면서 활동이 줄은 상태였다. 이에 맨프레드 아이허는 보보 스텐손 트리오를 연결하는 등 앨범을 연이어 제작했다. 그것은 <Voice In The Night>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또한 보보 스텐손 트리오는 그들 대로 <Serenity>로 절정에 오른 트리오의 미학을 들려주었다.

한편 만성피로 증후군으로 2년여를 휴식했던 키스 자렛이 자신의 집에서 혼자 녹음한 <Melody At Night With You>도 큰 인기를 얻었다. 이 외에 폴 모시안의 트리오 앨범 <I Have The Room Avove Her> 등 오랜 시간 레이블 밖에 있었던 연주자들의 앨범이 제작되었다.

한편 그룹 마스쿼렐로의 멤버로 80년대에 ECM에서 활동했던 트럼펫 연주자 닐스 페터 몰배르의 앨범 <Solid Ether>는 우주적 질감의 일렉트로 재즈를 담아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것은 그만큼 맨프레드 아이허가 새로운 음악에 열려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V. 2009 ~ 2018

Stefano Battaglia – Raccolto (2005)
Christian Wallumrød Ensemble – Fabula Suite Lugano (2009)
Keith Jarrett – Paris / London: Testament (2009)
Benedikt Jahnel Trio – Equilibrium (2012)
Collin Vallon – Le Vent (2014)
Marcin Wasilewski Trio with Joakim Milder – Spark Of Life (2014)
Mette Henriette – Mette Henriette (2015)
Tarkovsky Quartet – Nuit blanche (2017)
Vijay Iyer Sextet – Far from Over (2017)
Trygve Seim – Helsinki Song (2018)

ECM의 위상은 더욱 높아져 세계의 많은 연주자들이 앨범을 녹음하고 싶은 레이블이 되었다. 제작된 앨범의 수도 500장이 넘어 초기 10년에 비해 4배 이상 증가했다. 그럼에도 맨프레드 아이허는 그 사이 동료 제작자로 정선을 영입하긴 했지만 기존처럼 곳곳의 녹음 현장을 방문하고 스튜디오에 머무르며 거의 모든 앨범을 직접 제작했다.

그런 과정에서 새로운 연주자들을 만나곤 했다. 그 가운데 특이한 부분은 이미 음악적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한 연주자들의 유입이었다. 특히 팀 번, 랄프 알레시, 크리스 포터, 에단 아이버슨, 앤드류 시릴, 마이클 포마넥, 비제이 아이어 등이 맨프레드 아이허의 지휘 아래 앨범을 녹음한 것은 의외였다. 이것은 미국 내에서 이들 연주자들의 앨범을 안정적으로 제작해줄 레이블이 부족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맨프레드 아이허는 이 완성형 연주자들에서도 새로운 방향을 찾아낼 줄 알았다. 비제이 아이어의 <Far From Over>가 대표적이었다.

이탈리아 출신의 피아노 연주자 스테파노 바타글리아도 ECM 이전에 자신의 스타일을 확립한 연주자였다. 맨프레드 아이허는 그에게 음악적 날개를 부여했다. 이 외에 닉 뵈르치스 로닌 마르신 바실레프스키, 콜린 발롱, 크리스티안 발룸뢰드 등의 연주자들도 보다 확고해진 음악을 담은 앨범으로 ECM의 미래를 기대하게 했다.

한편 다시 ECM으로 돌아온 엔리코 라바나 토마추 스탕코 등의 기성 연주자들도 자신의 음악을 변화시키면서 계속 새로운 앨범을 선보였다. 레이블의 대표 연주자인 키스 자렛도 트리오 활동은 멈추었지만 투병 이후 새로운 방식의 즉흥 솔로 연주 활동을 이어가며 건재를 과시했다. 특히 파리와 런던 공연을 정리한 <Testament>는 그의 후기 역작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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