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M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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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M 레이블이 올 해로 설립 50주년을 맞았다. 갈수록 재즈가 대중 음악과 클래식 음악 사이에서 주목을 받지 못하는, 주변 음악으로 밀려나는 상황에서 한 레이블이 50년간 지속되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것도 독립 레이블로서 말이다.

누군가는 올 해로 80년을 맞은 블루 노트, 임펄스, 버브 같은 레이블을 이야기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들 레이블은 모두 메이저 음반사에 흡수되어 과거의 색채를 많이 상실한 상황이다. 그 과정에서 레이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성공을 이끌었던 제작자들이 바뀌거나 유명무실해졌다. 그러나 ECM은 그렇지 않았다. 레이블을 만든 맨프레드 아이허가 지금까지 50년간 레이블의 거의 모든 앨범을 제작해오고 있다. 따라서 ECM의 50년은 다른 어느 레이블과 비교할 수 없는 음악적 탐구와 확장의 시간이었다.

ECM의 역사는 지금부터 50년 전인 1969년 독일 뮌헨에서 시작되었다. 그 전까지 맨프레드 아이허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로 클래식과 재즈 연주활동을 했다. 연주자로서도 훌륭했지만 그는 음악을 듣는 것에 보다 더 뛰어난 능력이 있었다. 그는 임펄스나 ESP 레이블에서 제작된 진보적 재즈 앨범들을 즐겨 들었는데 그 음악에는 감탄하면서도 제작에는 만족하지 않았다. 악기의 질감, 강약 등 음악적인 요소가 제대로 담기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침 그 무렵 외부 요청으로 프리 재즈 색소폰 연주자 피터 브로츠만의 앨범 <Nipples> 등의 앨범을 제작할 기회가 있었다. 이 경험을 살려 직접 자신의 레이블을 만들어 모든 음악적 요소가 명확하게 들리는 투명한 사운드를 담은 앨범을 제작하기로 결심했다.  

레이블 이름에 대한 아이디어는 프리 재즈 트럼펫 연주자 와다다 레오 스미스가 제공했다. 당시 맨프레드 아이허는 이 트럼펫 연주자와 종종 함께 연주하곤 했다. 그런 중 자신의 레이블을 만들겠다는 의사를 내비치자, 10년 뒤 ECM에서 앨범을 발표하게 될 이 트럼펫 연주자는 “현대 음악을 다루는 총서(Edition Of Contemporary Music)”같은 개념의 레이블을 제안했다. 그렇게 맨프레드 아이허의 레이블은 ECM이 되었다.

처음부터 그는 레이블이 50년간 지속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당시 그가 레이블을 만들기 위해 빌린 돈 160,000 마르크는 당시 기준으로 4000달러로 앨범 몇 장을 제작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런데 기대 이상으로 레이블의 앨범이 호응을 얻으면서 제작이 이어지게 되었다.

현재 ECM을 이야기하면 많은 유럽 연주자들, 특히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등 스칸디나비아 반도 쪽의 연주자들과 그들의 음악을 많이 떠올린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부일 뿐이다. 특히 ECM의 초기는 미국 연주자들이 주를 이루었다. 레이블의 첫 앨범만해도 피아노 연주자 말 왈드론의 <Free At Last>였다. 빌리 할리데이를 비롯해 에릭 돌비, 찰스 밍거스, 존 콜트레인 등과 함께 연주했던 이 피아노 연주자는 당시 뮌헨에 체류 중이었다. 맨프레드 아이허는 평소 클럽에서 그를 종종 만나곤 했다. 그래서 앨범 녹음 제안했고 그 결과 1969년 11월 24일 루드비히스부르크에 위치한 바우어 스튜디오에서 레이블의 출발을 알리는 앨범을 녹음할 수 있었다. (이 앨범은 ECM 50주년을 맞아 미공개 트랙을 추가해 새롭게 재 발매될 예정이다.)

말 왈드론의 앨범을 시작으로 맨프레드 아이허는 폴 블레이, 칙 코리아, 게리 버튼, 키스 자렛, 랄프 타우너, 돈 체리, 데이브 홀랜드 등의 미국 연주자들의 앨범을 제작해 나갔다. 지금은 재즈의 거장으로 존경 받고 있지만 당시 이 연주자들은 미래가 불확실한 성장기에 있었다. 특히 폴 블레이의 경우 앨범을 녹음해 놓고도 앨범을 발매해줄 레이블이 없어 애를 먹던 중이었다. 게다가 음악 또한 대중적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맨프레드 아이허는 기꺼이 앨범을 발매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음악이 그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연주자들의 앨범을 제작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았다. 음악과 연주자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미처 연주자가 탐구하지 못했던 음악적 방향을 제시했다. 기타 연주자 팻 메시니를 발굴한 것이 그랬다. 이 기타 연주자는 1976년 첫 앨범 <Bright Size Life>를 발매하며 성공의 길을 시작했는데 그 전까지 그는 게리 버튼 그룹에서 믹 구드릭 다음의 세컨드 기타 연주자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맨프레드 아이허는 그의 음악적 잠재력을 발견하고 앨범 녹음의 기회를 주었다. 최근의 경우로는 올 해 발매된 래리 그르나디에의 앨범 <The Gleaner>를 들 수 있다. 이 베이스 연주자는 자신이 베이스 솔로 앨범을 녹음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맨프레드 아이허의 제안을 받고 1년간 방향을 설정하고 음악을 만든 끝에 앨범을 녹음할 수 있었다.

맨프레드 아이허는 평소 자신이 듣고 싶었던 존재하지 않는 음악을 적합한 연주자들의 조합을 통해 만들어내기도 했다. <Crystal Silence>(1972)로 대표되는 칙 코리아와 게리 버튼의 듀오 활동이 그런 경우였다. 평소 그는 비브라폰과 피아노의 듀오 연주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런 중 두 연주자가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자 주저 없이 앨범을 제작했다. 알려진 대로 이들의 만남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키스 자렛 트리오도 그의 혜안에서 나왔다. 키스 자렛은 솔로 앨범 <Facing You>로 ECM과의 인연을 시작했는데 애초 맨프레드 아이허가 피아노 연주자에게 제안했던 것은 트리오 앨범으로 함께 할 연주자로 게리 피콕, 잭 드조넷까지 구체적으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키스 자렛의 의견을 받아들여 솔로 앨범을 제작하는 한편 여기서 더 나아가 <Köln Concert>(1975)로 대표되는 즉흥 피아노 솔로 콘서트 활동으로 연주자를 이끌었다.

색소폰 연주자 얀 가바렉과 클래식 보컬 쿼텟 힐리어드 앙상블과의 협연도 맨프레드 아이허의 음악적 직관에서 나왔다. 색소폰과 성가를 노래하는 남성 보컬 쿼텟의 만남은 쉽게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1994년에 발매된 첫 앨범 <Officium>은 그 조합이 숭고한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음악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확실히 ECM의 초기 카탈로그는 미국 연주자들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이내 맨프레드 아이허는 얀 가바렉의 <Afric Pepperbird>(1970)를 시작으로 유럽 연주자들의 앨범 제작을 늘렸다. 테르예 립달, 아릴드 안데르센, 욘 크리스텐센, 보보 스텐손, 토마추 스탕코, 에버하르트 베버, 존 서먼 등의 연주자가 대표적인데 이들 연주자들은 ECM을 만나면서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고 세계적인 연주자로 성장했다. 그리고 ECM의 성공과 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 현재도 토드 구스타프센, 마츠 아일러츠센, 크리스티안 발룸뢰드, 트릭베 세임, 마티아스 에익, 야콥 브로 등의 유럽 연주자들이 ECM을 통해 세계적으로 주목 받고 있다.

맨프레드 아이허는 연주자의 국적, 지명도 등과 상관 없이 자신의 취향만을 따라 앨범을 제작했다. 그것이 다양한 개성을 지닌 연주자들을 만나게 했고 나아가 재즈의 경계를 확장하게 만들었다.

나아가 그의 취향은 재즈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에그베르토 기스몬티, 나나 바스콘셀로스, 아누아 브라헴, 디노 살루지, 자키르 후세인, 사비나 야나투, 시니카 랑엘랑 등 지역적 색채가 강한 여러 성향의 연주자들의 앨범도 제작했다. 나아가 자신의 음악적 직관을 살려 다른 성향의 연주자들과의 만남도 꾸준히 기획했다. 콜린 월코트, 돈 체리, 나나 바스콘셀로스가 함께 했던 <Codona>(1979), 얀 가바렉과 파키스탄 연주자가 만난 <Ragas and Sagas>(1992), 아누아 브라함과 얀 가바렉, 존 서먼, 데이브 홀랜드가 함께 한 <Thimar>(1998), 아코데온 연주자 디노 살루지와 클래식 첼로 연주자 안야 레흐너가 만난 <Ojos Negros>(2007), 같은 앨범들이 그 예이다.

Kaupo Kikkas

이러한 맨프레드 아이허의 취향은 ECM 뉴 시리즈로 이어졌다. 이 시리즈의 시작은 우연한 발견에서 시작되었다. 1977년 그는 아르메니아의 라디오 방송을 듣다가 에스토니아 출신의 클래식 음악 작곡가 아르보 페르트의 “Tabula Rasa”를 들었다. 이 곡에 감동 받은 그는 이후 당시 소비에트 연방에 속한 이 작곡가의 앨범을 제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 결과 1984년 키스 자렛과 클래식 바이올린 연주자 기돈 크레머, 리투아니아 실내악 오케스트라 등이 참여한 앨범 <Tabula Rasa>를 제작할 수 있었다. 그와 함께 그는 내친김에 클래식 앨범도 본격적으로 제작하기로 결심했다.

클래식 앨범 제작에서도 그는 작곡가의 의도에만 의존하지 않고 연주자의 개성이 돋보이는 앨범을 제작했다. 그래서 그것이 바흐가 되었건, 베토벤이 되었건 뉴 시리즈의 앨범에는 바로 지금이라는 현대적인 맛이 났다. 나아가 그는 아르보 페르트를 비롯해 스티브 라이히, 기야 칸첼리, 발렌틴 실베스트로프, 티그란 만수리안, 에르키스벤 튀르 등 현대 작곡가들의 앨범을 적극 제작했다.

나아가 앞서 언급한 얀 가바렉과 힐리아드 앙상블의 협연부터 색소폰 연주자 존 셔먼, 베이스 연주자 배리 가이와 테너 존 포터의 조합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작곡가 존 다울랜드의 곡을 연주하게 하는 등 재즈 앨범 제작에서처럼 자신의 취향에 따라 색다른 시도를 담은 앨범을 제작했다. 또한 앨범에 참여하는 연주자들에게 종종 고전 작곡가들의 곡과 현대 작곡가들의 곡을 함께 연주하도록 하여 감상자들에게 각 곡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하곤 했다.

이처럼 맨프레드 아이허는 전방위적으로 음악을 듣고 그 중 마음에 드는 연주자와 음악이 있다면 상업적 고려 없이 앨범을 제작한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새로운 연주자나 음악을 발견하기를 거부한다. 직접 공연을 보거나 여행 중의 라디오 청취 등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새로운 만남을 갖기를 원한다. 따라서 세계 곳곳에서 연애편지처럼 그에게 보낸 데모 음원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는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음악 활동을 하고 있으면 언젠가 자신이 알아서 찾아가겠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그는 재즈, 클래식, 월드 뮤직, 전자 음악 등 다양한 서향의 음악을 아우르며 앨범 제작을 해왔다. 그렇다면 그의 취향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실내악적인 느낌의 음악이다. 여기서 말하는 실내악이란 단지 클래식의 실내악을 의미하지 않는다. 각각의 악기들이 독립성을 가지고 존재하는 동시에 서로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음악을 말한다. 그런 음악의 이상은 대편성보다는 소편성 연주에서 구현될 수 있다.

그렇다고 그가 빅 밴드 재즈 앨범이나 클래식 오케스트라 앨범 제작을 거부했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ECM의 카탈로그를 살펴보면 확실히 소편성 앨범이 주를 이룬다. 나아가 그는 앨범 제작 시 연주자들에게 종종 천천히 연주할 것을 요청하곤 한다. 이 또한 개별 악기들이 또렷하게 들리는 실내악적인 사운드를 위한 것이다.

이처럼 맨프레드 아이허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은 수 많은 개성 강한 연주자들이 만들어 낸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에도 불구하고 다른 레이블과 구분되는 독특한 통일성을 부여했다. 그것은 바로 잔향(殘響, Reverberation)을 통해 만들어 낸 풍부한 공간감이 돋보이는 사운드로 정의할 수 있다. ECM의 앨범 대부분은 악기와 악기 사이의 여백이 돋보인다. 이 여백은 단지 악기의 분리를 넘어 음악적 효과를 발생한다. 악기에서 나온 소리들의 근원에 침묵이 자리잡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ECM의 앨범을 들으면 감상자들은 멜로디, 리듬, 화성 외에 그 음악을 감사는 투명한 공간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공간감은 이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의 상상을 이끈다.

이러한 음악적 여백을 구현하기 위해 맨프레드 아이허는 연주자를 선정하고 그들의 음악적 방향을 결정하는 것만큼이나 이틀의 녹음과 하루의 믹싱으로 이루어지곤 하는 제작 과정에도 적극 개입했다. 이를 통해 두 개의 스피커가 만든 가상의 공간에 악기가 정확히 배치되고 그 악기들의 소리가 미세한 부분까지 잘 드러나는 사운드를 만들었다.

이를 위해 그는 얀 에릭 콩쇼그, 마틴 빌란트, 제임스 파버, 마르쿠스 아일랜드, 스테판 아메리노, 제라르 드 아로, 미틴 피어슨 등의 엔지니어와 긴밀한 협력을 유지했다. 이들은 맨프레드 아이어가 연주자와 그 음악에 맞추어 상정한 이상적 공간, 이상적인 사운드를 충실히 구현했다. 특히 지난 11월 5일 세상을 떠난 얀 에릭 콩쇼그는 700장이 넘는 앨범에 참여하여 ECM이 다른 레이블과 차별되는 사운드를 지니는데 큰 역할을 했다.  

Patrick Hinely

많은 평론가와 감상자들은 ECM의 카탈로그를 여러 연주자들의 앨범 목록을 넘어 독립적인 생명체처럼 바라보았다. 그들은 차가움, 명징(明澄), 부유(浮遊) 등의 단어로 레이블을 이야기했다. 특히 캐나다의 음악잡지 CODA가 1971년에 ECM 레이블에서 제작된 앨범들을 리뷰하면서 사용한 ‘침묵 다음으로 아름다운 소리’라는 표현은 ECM의 음악과 사운드를 정의하는 관용구가 되었다.

하지만 맨프레드 아이허는 그렇다고 “ECM 스타일의 음악”이라던가 “ECM 사운드”라는 말로 ECM의 앨범들을 하나로 묶는 것에 반대한다. 그는 특정한 공식을 정하지 않고 앨범마다 그 음악에 맞추어 녹음하고 믹싱했으며 음악 또한 “북구의 사운드”외에 다양한 스타일을 아우르고 있음을 강조하곤 한다. 그럼에도 ECM을 하나의 스타일, 하나의 사운드로 규정하려는 것은 레이블 전체의 음악을 제대로 듣지 못했기 때문이라 한다.

이를 위해 키스 자렛, 스티브 쿤, 보보 스텐손, 폴 블레이, 칙 코리아 등 ECM의 초기 성공을 이끈 피아노 연주자들의 앨범이나 토마추 스탕코 쿼텟에서의 마르신 바실레프스키, 최근의 케틸 뵤른스타드, 토드 구스타프센 등 현재 ECM을 이끌고 있는 피아노 연주자들의 앨범을 들어보기 바란다. 언급한 연주자들의 앨범은 얀 에릭 콩쇼그가 녹음했다. 그런데 연주자들의 각기 다른 음악만큼 그 피아노 소리 또한 다르다. 잔향의 강도와 그로 인한 공간감도 다르다. 이것은 맨프레드 아이허가 같은 편성, 같은 물리적 공간이라 하더라도 각 연주자들에 어울리는 이상적인 음악 공간을 설정하고 이에 맞추어 녹음과 믹싱을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몇 해 전부터는 비제이 아이어, 팀 번, 크레이그 테이번, 에단 아이버슨, 조 로바노 등 미국의 진보적 성향의 연주자들이 ECM에서 앨범을 녹음하고 있다. 이들 연주자들의 앨범은 기존과는 다른 느낌의 공간감을 담고 있다. 심지어 음악 공간이 다른 레이블의 앨범처럼 협소한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ECM의 섬세한 제작에서 벗어났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그저 음악에 어울리는 사운드를 담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ECM 사운드, ECM 스타일로 레이블의 음악과 사운드를 규정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일 수 있다.

한편 맨프레드 아이허는 ECM을 설명할 때 ‘귀를 눈처럼 생각하라’는 말을 종종 하곤 한다. 미국 작가 거트루드 스타인이 했던 ‘작가는 눈으로 글을 쓰고 화가는 귀로 그림을 그려야 한다’라는 말을 음악적으로 응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그가 음악과 이미지를 연결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 그는 앨범 제작을 영화 제작과 비교하곤 한다. 시각적인 이미지, 극적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장면을 찍고 이들을 편집하여 이야기를 만들듯이 그 또한 음악의 풍경,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하고 녹음하고 믹싱하며 곡들을 배열해 앨범을 만든다. 그래서 그는 요즈음 사람들이 앨범 단위로 음악을 감상하지 않는 것에 아쉬워한다. 그에게 앨범은 한편의 영화와도 같다.

음악을 이미지처럼 바라보기에 그는 앨범의 첫인상과 감상욕구를 결정하는 앨범 커버에도 각별한 관심을 두고 있다. 실제 바바라 보이어쉬를 시작으로 얀 에들리츠카, 디에터 렘, 마요 부허, 사샤 클라이스, 안웅철 등의 사진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화가, 디자이너 등에 의해 만들어진, 모노톤의 풍경 사진과 한쪽에 작게 배치된 깔끔한 글자로 이루어진 커버는 멀리서도 단번에 ECM의 앨범을 알아보게 한다. 그리고 앨범을 듣기 전 음악을 먼저 상상하게 한다. 그래서 실제 앨범 감상은 사전에 상상한 음악 풍경과 실제의 음악 풍경을 비교하고 확인하는 과정이 되곤 한다.

나아가 일관성 있는 커버 이미지들은 앨범을 하나의 예술적 대상으로 바라보게 하여 수집욕구를 자극한다. ECM의 커버 이미지를 주제로 한 <Sleeves of Desire>, <Windfall Light>같은 책들이 발간된 것이나 최근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RE: ECM>을 비롯한 전시회가 세계 곳곳에서 기획된 것도 ECM의 앨범들이 듣는 것만큼 보는 재미를 제공하고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지금까지 맨프레드 아이허는 탁월한 예술적 직관으로 세계 곳곳의 개성 있는 연주자를 발견해 재즈의 가능성을 넓혔다. 또한 사려 깊은 녹음과 믹싱이 음악 풍경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전하는 한편 앨범 커버 이미지까지 세심히 선택하여 음악과 별개로 앨범 자체를 하나의 미적 대상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 반세기 동안 부침 없이 제작을 이어오며 ECM을 감상자가 좋아하고 연주자가 동경하는 레이블로 만들었다.

어찌보면 ECM은 독립 레이블의 이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이상적 레이블에도 한계와 걱정거리가 있다. 그것은 바로 맨프레드 아이허의 나이이다. 1943년생인 그는 올 해 우리 나이로 77세이다. 보통은 은퇴해 그동안 자신이 만든 앨범을 다시 듣고 있을 나이이다. 하지만 지금도 그는 아직 만나지 못한 특별한 연주자, 새로운 음악을 찾아 다니고 있고, 미국, 유럽의 여러 스튜디오와 성당, 수도원 등을 돌며 꾸준히 앨범을 제작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얀 에릭 콩쇼그가 세상을 떠나고 키스 자렛 트리오가 활동을 멈추었듯이 제작자로서 그의 삶 또한 영원할 수 없다. 언젠가는 그 또한 활동을 멈추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ECM은 어떻게 될까? 다른 제작자, 가령 ECM에서 몇 장의 앨범을 제작해 오고 있는 정선 같은 인물이 레이블을 책임지게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ECM, 새로운 카탈로그의 시작이 될 것이다. 맨프레드 아이허의 음악적 취향이 곧 ECM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레이블의 50주년을 기꺼이 축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의 건강을 기원하고 레이블의 미래를 걱정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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