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sper Not – Keith Jarrett Trio

발매 2000
ECM 1724/25

Keith Jarrett - Piano
Gary Peacock - Double-Bass
Jack DeJohnette - Drums

키스 자렛 트리오의 이 앨범을 위해 프랑스의 한 클래식, 재즈 라디오는 24시시간을 키스 자렛의 음악으로 채우는 날을 기획했다. 그것은 아마도 이 앨범이 담고 있는 장소가 파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도 관람할 수 있었지만 정보부족으로 며칠 전 서울행 비행기를 타는 바람에 이 공연을 놓쳤다. 그래서 내겐 가슴 아픈 앨범이다. 특히 이번 앨범은 그가 오랜 기간을 지병과 싸운 뒤 <Melody At Night With You>라는 솔로 앨범을 통해 활동재개의 가능성을 엿본 뒤 본격적으로 발표한 첫 앨범이라서 의미가 크다.

바로 전의 트리오 앨범인 <Tokyo 96>앨범이 발표되었을 때 나는 이상한 아쉬움을 느꼈었다. 그것은 트리오의 연주 자체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동안 트리오가 지속되면서 일종의 식상함을 느꼈을까?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이미 최고를 예상하고 감상을 시작하게 된다거나 키스 자렛 트리오라는 이름만으로 그 스타일을 예상하게 된다는 점이 어쩌면 새 앨범이 지닌 신선함을 떨어뜨렸을 지도 모른다. 일종의 물리기 효과였다. 좋은 것도 너무 과하면 질리지 않는가? 이 관점에서 본다면 자주 멤버를 바꾸었던빌 에반스가 현명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내 느낌을 고려한다면 이 앨범은 신선한 부분을 담고 있다. 먼저 선곡을 보면 앵콜곡으로 연주한 ‘When I Fall In Love’를 제외하고 이 공연에서 연주된 곡들은 앨범 상으로는 모두 처음 만나게 되는 곡들이다. <Tokyo 96>앨범에서 가장 많은 아쉬움으로 지적되었던 것이 이미 연주되었던 곡들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었는데 아마 이를 인식했었나 보다. 선곡한 곡들은 대부분이 베니 골슨, 디지 길레스피, 클리포드 브라운, 델로니어스 몽크 등 밥시대를 풍미했던 연주자겸, 작곡가들의 곡이다. 키스 자렛에 의하면 밥 시대에 대한 헌정이라고 한다. 그래서 여느 때보다 그의 플레이는 속도감이 있다. 하지만 다른 앨범보다 그의 스타일이 절제되어 있음을 느낀다. 그만이 들려줄 수 있었던 서서히 상승해서 일종의 황홀경을 만들어 내는 분위기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아마도 그가 그의 건강을 생각해서 오버하지 않으려 했었다고 생각된다. 사실 파리 공연은 그의 짧은 유럽 투어의 마지막 장소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공연의 성사여부를 걱정했고 키스 자렛 스스로도 염려가 되었는지 공연 전에 리허설을 해보는 예외를 보였다.)

이전의 앨범들이 기존 스탠더드를 테마부터 자신만의 텍스트로 바꾸어 버렸다면 이 앨범에서는 원 텍스트를 존중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거대하게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기 보다는 리듬감을 우선으로 하는 듯한 솔로의 전개가 유독 이 앨범에서 다르게 들린다. 예를 들면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시작을 무슨 곡인지 알아채기 힘들게 그만의 솔로로 시작해서 테마로 이어지는 방식의 연주가 이 앨범에서는 상당히 짧게 처리되거나 아예 없이 바로 테마로 들어가는 형식을 취한다. 그래서 인지 나는 이번 앨범을 들으면서 또다른 피아노의 대가 케니 드류가 스티플 체이스 라벨을 통해서 NHØP의 베이스와 함께 들려주었던 일련의 경쾌한 연주를 생각했다. 혹시 케니 드류 트리오의 앨범이 있다면 한번 비교해 들어보기 바란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딘가 아쉬움이 느껴지는데 그것은 박진감의 부족이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트리오라이브 앨범 <Still Live>에서 들려주었던 그 부서질 듯한 격렬함이 이 앨범에서는 부드러움으로 대치되어 있다. 살짝 힘든 부분을 연륜에서 오는 재치로 해결하듯이 이 앨범에서는 힘보다는 나비같은 팔랑거림이 더 많이 드러난다. 새로움을 위한 시도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 역시 그의 건강에 기인한 것이 아닌지.
한편 이런 부분은 녹음에서 기인하지 않을까 의심을 하게 하는 점이 있다. 최근 ECM 녹음의 특징이 라이브는 물론 스튜디오 앨범도 자연 어쿠스틱이 있는 콘서트 홀이나 성당에서 녹음을 하고 그 때에 맞추어 엔지니어를 다르게 고용한다는 것인데 이 앨범은 마틴 피어슨이라는 사람이 맡았다. 전체적으로 듣는데는 아무런 무리가 없다. 그러나 키스 자렛의 피아노 소리는 상대적으로 밝음과 활기가 덜하고 드조넷의 심벌은 찰랑거리지 않는다. 그리고 통통 튀는 듯하던 피콕의 베이스는 둥둥거릴 뿐이다. 나아가 콘서트 홀의 공간적 이미지도 상당히 작게 느껴진다. 다른 라벨에서 이런 녹음을 들려주었다면 아마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일 수도 있지만 나름대로 사운드를 음악만큼 염두에 두는 라벨의 사운드 치고는 너무나 아쉽다. 이 부분은 <Tokyo 96>에서 드러났던 부분이 그대로 재연된 것이다. 진짜 마틴 빌란트가 86년에 녹음했던 뮌헨에서의 공연을 담은 <Still Live>에서의 박진감이 그리워지게 한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이번 키스 자렛 트리오의 새 앨범은 여전히 세 명의 연주가 녹이 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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