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Vent – Colin Vallon

발매 2014
ECM 2347

Colin Vallon - Piano
Patrice Moret - Double Bass
Julian Sartorius - Drums

멜로디가 선연히 빛나는 연주가 있는가 하면 귀를 확 사로잡는 멜로디 없이 전체적인 분위기가 빛나는 연주가 있다. 이 두 스타일 중 대부분의 감상자들은 멜로디가 드러나는 연주, 마치 노래하는 듯한 연주를 선호한다. 아무래도 멜로디를 중심에 두면 그 연주의 흐름을 따라가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멜로디를 뒤로 감춘 연주를 만나면 좋다 싫다를 판단하기 전에 감상 자체를 어려워하곤 한다. 하지만 느낄 수만 있다면 멜로디를 안으로 감춘 연주가 주는 정서적 만족은 무척 깊고 넓다.

콜랭 발롱의 이번 ECM에서의 두 번째 트리오 앨범이 그렇다. <바람>을 타이틀로 한 이 앨범에서 이 스위스 출신의 피아노 연주자는 멜로디를 중심에 두지 않는 듯한 연주를 들려준다. 멜로디를 뒤로 감추었다기보다는 멜로디의 일부분을 생략한 듯한 연주라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그의 왼손 연주는 음들의 간격을 벌리고 그 사이를 여백으로 채웠다. 그래서 멜로디의 일부분이 생략된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코드를 누르는 오른손 연주도 마찬가지다. 그의 코드들은 깊은 잔향을 남기며 느릿느릿 움직인다. 그래서 여기에서도 여백, 침묵이 강하게 느껴진다.

사실 이것은 ECM의 다른 피아노 연주자들의 연주에서도 발견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모두들은 동일성 속에서 차이를 만들어 내왔다. 이번 앨범에서 콜랭 발롱의 경우는 멜로디의 생략과 깊은 여운을 지닌 코드의 연결을 통해 감상자의 상상을 자극한다는 것이 색다르게 다가온다. 충분한 간격을 두고 배열된 음들은 감상자가 직접 멜로디를 만들어 그 여백을 채우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코드의 울림은 그 멜로디의 동기를 부여한다. 말하자면 그냥 들리는 대로 듣는 것이 아니라 작곡하듯 감상하게 한다.

그가 감상자로 하여금 상상하기를 바라는 것은 바람처럼 잡히지 않으며 잘 보이지도 않는 덧없는 감정들이 아닌가 싶다. 수록된 12곡 가운데 그가 홀로 작곡한 9곡이 ‘Immobile 움직이지 않는 것’, ‘Le Vent 바람’, ‘재 Cendre’, ‘희미해짐 Fade’, ‘이별 Goodbye’ 등을 주제로 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의 연주도 또한 그에 걸맞게 다소 어둡고 우울한 서정을 분위기를 띄고 있다.

사실 ECM에서의 첫 앨범이었던 <Rruga>를 비롯한 이전 앨범에서 콜랭 발롱은 이번 앨범과 달리 멜로디를 중심에 두고 전세 사운드를 구축했었다. 그랬던 것이 이렇게 변하게 된 것은 아무래도 오랜 시간 그와 함께 했던 드럼 연주자 사무엘 로흐러가 떠나고 줄리앙 사르토리우스가 그 자리를 채운 것이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다. 사무엘 로흐러는 트리오에서 드럼 연주뿐만 아니라 작곡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었다. 이런 그가 떠났으니 트리오의 색이 변하는 것은 당연한 법. 더구나

이번 앨범으로 처음 만나는 줄리앙 사르토리우스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전임 연주자와는 다른 개성을 지닌 연주자인 것 같다. 이 새로운 드럼 연주자는 이번 앨범에서 리듬 연주보다는 미묘한 뉘앙스를 지닌 소리를 만들어 내는 데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그가 심벌을 다양한 세기로 두드리고 문질러 만들어 낸 소리는 여백의 넓이와 깊이를 강조한다. 나아가 피아노와 대조적인 관계를 형성하며 곡의 극적인 맛을 강화한다. 시를 쓰듯 차분하게 흐르는 피아노 뒤로 이와 상관 없는 듯한 소리를 내는 ‘Immobile’, ‘Le Quai’, ‘Fade’같은 곡이 대표적이다. 이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까? 베이스 연주자 파트리스 모레 또한 이에 맞추어 아르코 주법을 사용하는 등 보통의 베이스 연주자와 다른 질감을 표현하는 연주를 펼친다. 앨범의 후반부를 장식하고 있는 자유즉흥연주 ‘Styx’와 ‘Corolis’는 이러한 트리오의 색다른 호흡을 잘 담아낸 곡이다.

콜랭 발랭의 이번 앨범은 분명 멜로디를 중심으로 적당히 배경에 흐르게 두고 싶은 음악은 아니다.  하지만 확 들어오는 멜로디가 없음에도 서정적이다. 게다가 그 여운 또한 무척이나 길다. 특별한 설명 없이 나열된 사진, 응시하면 그 한 장 한 장에 담긴 이야기를 알게 되는 사진 같은 음악이랄까? 따라서 중요한 것은 앨범에 담긴 여백과 침묵에 상응하는 당신의 여백과 침묵이다. 그것이 없다면 이 앨범은 이해할 수 없는 추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조건을 갖추고 감상한다면 가슴, 마음이 공명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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